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이미지는
연한 핑크빛, 딸기우유색 캐쉬미어 가디건이다...
외할머니댁에 놀러갔을때마다 일요일아침 마루에서 늦잠을 자는 내눈에
곱게 머리를 빗고 이모들이 사준 예쁜 딸기우유색 가디건을 입으시고
아침일찍 성경책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서시는 모습을 보고
신발장 너머의 할머니에게 '다녀오세요~' 하고 계속 잠을 이어갔던 기억은 지금도 여전하다...
큰소리한번 내신적이 없고 말투는 조용조용하며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잘 웃으셨던 할머니는...
어느새 올해로 88세가 되셨고 여전히 딸기우유색 옷을 입고계시다...



나이에 비해 곱고 흉터나 잡티, 검버섯 하나 없는 부드러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으면 참 좋다...

내손보다도 훨씬 부드러운것같다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얘기를 하면

'젊고 어린 네손이 더 부드럽지...' 라며 웃으시는 할머니는

사실 이제 많은 인생의 대부분의 기억을 잃고계시다...

보는사람마다 '너는 누구니?' 라고 하시거나

나에게 '학교는 다녀왔니?' 라고 묻기도 하신다...

그런순간순간 표정이 바뀌지 않고 멈칫하지 않고 당연하다는듯 자연스럽게 할머니에게 대답을 하는것이

내가 할수 있는 유일한것이라는게 너무 마음이 아프기만하다...


요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뵈러가는일에 좀 소홀했는데...

며칠전까지 엄마가 모시고계시다가 다리를 다치셔서 입원하시게 된 할머니를 뵈러

늦은저녁 병원으로 갔다...

여느때와마찬가지로 나를 보자마자 '너는 누구니?' 라고 하시는 할머니께

웃으며 내 이름을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할머니는 기억속에서 나를 찾아내시고는

'오랜만에 왔구나... 바빴니?' 라고 하신다...
어제일도, 아니 사실은 1분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시면서도
나에대한 기억을 조금이라도 가져주셔서 어찌나 고마운지,
대부분의 것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상황에서도 기다리고 계셨을 할머니께 어찌나 죄송하던지...
 



할머니가 이모집으로 옮겨가셨을때와 달리...
병원에 입원하시던날...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할머니곁을 지키느라 엄마가 집을 비우셨을때....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이 정확한 압빠는 평소와 달리 꼬박 한숨도 제대로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고
엄마도 할머니를 입원시키고 돌아오던날 하루종일 마음이 이상하다고 했다...

내가 태어날때부터 할머니는 계속 나에게 할머니였다...
그땐 지금보다 훨씬 젊으셨겠지만 여전히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나의 할머니...
내가 아는 사람중 가장 맛있는 식혜를 만들고 가장 아름다운 은색 머릿결을 가졌으며
손자 손녀들에게 이보다 더 좋을수 없는 멋진 나의 할머니...
여전히 곱고 부드러운 할머니의 손을 잡고있을때면
하루하루가 고되고 힘든 할머니는 '늙으면 빨리 가야하는데...' 라고 하시고
나는 늘 '에이~ 아직 멀었다 할머니...' 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그런 나를 바라보시는 할머니의 눈을 보고있으면...
아직 할머니와의 이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저만치 밀어두고 싶은게 사실이니까...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계셔주실 시간이 얼만큼인지는 아무도 알수 없고
그 시간들이 할머니에게도, 할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엄마에게도 너무 힘들다는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너무 이기적인지... 할머니의 기억이 더이상 지워지지 않은 상태로
우리와 더 많은시간을 함께 보낼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나보다도 엄마가 더 그럴테지만...
게으름부리지 말고 할머니를 볼수 있을때 좀 더 자주 시간을 내야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자세가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눈 으 로 하 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하루...  (0) 2012.03.11
나의 책...  (0) 2012.03.10
나의 외할머니...  (2) 2012.03.08
2월의 조각들...  (2) 2012.03.05
칭구의 결혼식...  (0) 2012.03.03
오늘의 간식...  (2) 2012.02.26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옳타커니 2012.03.08 16: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손이 정말 정말 고우시네요~^^

    • BlogIcon gyul 2012.03.09 03:5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볼때마다 신기하기만해요...
      거의 9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도 이렇게 예쁘고 고울수 있다니...
      제손은 벌써 거칠거칠한데말이예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