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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때부터 알약을 씹어먹는다.
캡슐에 들어있는것은 숟가락에 물과 같이 풀어 먹고
씹어먹기 힘든것은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들어 먹는다.
덕분에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도 많았다.
의사선생님들께 알약대신 가루약으로 처방해달라고 하거나 알약을 가루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사항을 써달라고 부탁해야했고
의사선생님이 신경써주셔서 나의 사정에 대해 써주신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
약국 주인들로부터 온갖 잔소리폭탄을 맞아야 했으며
엄마압빠는 애기들도 다 잘 먹는 알약을 못먹는다며 괜히 남들 있는데서 농담삼아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내가 알약을 씹어먹는줄 모르는 사람들은
약을먹는 내 표정을 보고 너무 엄살부리는거 아니냐며 어이없어하는일도 수없이 많았다.
노력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알약을 싸는 종이가 있는데 이 종이에 싸면 잘 삼키지못하는 사람도 알약을 먹을수 있다고 해서 시도해보았지만
더 힘들었고
코를 막고 물과 약을 입에 넣고 숨을 안쉬어봤지만 삼키기는커녕 목에 걸려 심한 구토만 했으며
삼킬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계속 시도했을때는 생수 한통을 다 마셔버렸고
약은 이미 삼키기도 전에 다 녹아버렸다.

결국 나의 기억에 태어나서 한번도 알약을 삼켜먹어본 적은 없었는데
얼마전 스펀지를 보고 어떻게든 알약을 삼켜먹긴 해야겠구나 싶어 다시 노력중이다.
알약을 그냥 삼키기는 여전히 어려워 가루로 내는 대신 작은 조각으로 잘라 연습을 해보았는데
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작은조각 몇개를 삼키는 쾌거를 기록했다. 

그 후에 '가루로 만들어주세요.' 라고 써주시던 의사선생님께
어떻게든 삼키려 노력해볼테니 최대한 작은 알약으로 처방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정말 괜찮겠냐며 웃으셨고 두꺼운 알약대신 최대한 작고 얇은것으로 처방해주셨고
잘 되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노력중이고
대부분의 알약을 여전히 씹어먹지만
그나마 다행인것은 지름이 5mm도 채 되지 않는 아스피린은 삼킬수 있게 되었다는것이다.

알약을 삼키지 못해 씹어먹는사람의 고통을 모른다면
그 앞에서 적어도 그게 뭐 그리 어려운일이냐는 얼굴만은 하지 않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작은일 하나 내맘대로 되지 않는것이 더 힘들다는것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할만한 기운도 없이 아프기 때문에 지금 그 약을 씹어먹고있는것이니
그냥 웃으며 다정하게 얼른 나으라는 말한마디만 건네주면 된다.

(약을 먹을때마다 내 손바닥위의 알약들은 저렇게 울고 있지만...
미안허다...언니가 또 너네를 씹어먹어야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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